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Freakonomics: A Rogue Economist Explores the Hidden Side of Everything
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5
Freakonomics는 freak와 economics의 합성어다. ‘프리코노믹스’로 번역했다면 발음상 Freeconomics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므로 ‘괴짜경제학’이라는 번역본 제목은 적절한 것 같다.
레빗은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하찮은’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전혀 관계없을 것 같아 보이는 현상들에 대한 데이터로부터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이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흔히 우리가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고 으레 생각하던 것들이 꼼꼼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두 요인이 서로 관련 있다고 해서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의 전환에서 그의 연구방향이 설정된다.
윤리학이 이상의 세계를 다룬다면 경제학은 현실의 세계를 다룬다. 경제학의 근본은 ‘인센티브’에 있다. 사람들은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상은 사람들의 다양한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인다. 이러한 인센티브를 제대로 이해해야 현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놀이방에 맡긴 아이를 지정된 시간보다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의 숫자를 줄여보고자 이들에게 벌금을 부과하자 늦는 부모들이 더 늘어났다. 어떻게 된 것일까? 부모들이 내는 벌금이 지각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센티브는 때때로 복잡한 방향성을 지닌다.
정보(information)도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갖가지 전문 정보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레빗은 전문가들을 ‘그들이 아는 정보를 당신이 모른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는 족속’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정보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 정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정이나 추측만으로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보로 무장한 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한 무언의 지레효과를 활용할 수 있다. 바로 공포심이다. 공포심도 때로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된다. 이러한 공포심이 권력에 의해 국민들에게 심어지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유해물은 그 자체만으로는 위협적이지 않다. 유해물이 분노와 결합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리스크(risk)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권력, 전문가 집단, 언론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전문가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절박하게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이 두 진영은 서로 합작하여 사회 통념의 창조자가 된다.’
미국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도 자신의 최근 인터뷰 모음집 ‘제국주의적 야망(Imperial Ambition)’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나 그릇된 정보들을 미국인들에게 주입해 미국인들이 공포에 떨게 만들었는지 지적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1962년 인류를 핵전쟁 위기까지 몰고 갔던 쿠바 사태(Cuban Crisis) 역시 그릇된 공포에서 출발한 위기였다.
사회의 위계적 계층질서에서 꼭대기에 머물기 위해서 상류계층은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띤다. 모두가 할 수 있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류층이 지니는 문화는 상류층에 속하기 때문에 향유할 수 있다기 보다는 상류층에 속하기 위해서 향유한다고 해야할 것이다.
레빗은 미국인들의 이름을 놓고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쓰는 이름과 가난한 사람들이 쓰는 이름은 따로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일반 사람들이 부유층 이름을 대거 차용하기 시작하면 부유층 부모들은 그 이름을 포기하고 다른 이름으로 옮겨간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부 대중화된 명품들은 상류층에서 아예 명품으로 쳐주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이와 비슷한 이치라 하겠다.
이 책의 미덕은 경제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으며, 그러한 시도를 쉬운 언어로 설명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레빗이 얼마나 글을 못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자신이 직접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전문 작가 더브너의 능수능란한 글 솜씨가 이 책을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것을 넘어 너무 가볍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로 치면 인디계열에 속할 것 같은 레빗의 책이 블록버스터(blockbuster)와 같은 제작과정을 거쳐 출시된 것 같은 느낌이다.
문학평론가 표정훈씨는 저서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일종의 '북 페티시즘(book fetishism)'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사실 나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서점에 가서 책들을 어루만지노라면 커버, 내지, 두께, 질감 등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원서 ‘Freakonomics'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가 처음 만난 이 놈은 ’rough cut edition'이라는 형태로 출판되었는데,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책의 옆 부분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처리했다. 그 울퉁불퉁한 종이 끝 질감을 느끼면서도 27,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눈물을 머금으며 내려놓고 대신 번역본을 사들고 왔던 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이 선택에서 나의 인센티브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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