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 카를로스 루이사 사폰 I Am What I Read

바람의 그림자  La Sombra del Viento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5


배경은 2차대전이 끝나고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는 20세기 중반 바르셀로나. 사건은 죽은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주인공 다니엘이 아버지를 따라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뽑아 온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된다.

훌리안 카락스라는 소설가가 쓴 '바람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이 책에 매료된 다니엘은 미스테리에 싸여있는 훌리안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훌리안을 증오하는 푸메로 형사와 훌리안의 모든 책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의문의 사나이가 다니엘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그 책이 바로 세상에 남아 있는 훌리안의 마지막 책이기 때문이다.

10여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훌리안의 실체에 한발짝씩 다가서면서 어린 다니엘은 사랑, 증오, 배신, 고통, 기쁨, 우정 등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이 기간 다니엘의 삶은 공교롭게도 훌리안의 삶과 닮아간다.

훌리안의 실체가 가까워져 옴에 따라 어느 순간 다니엘은 그 자신이 훌리안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이제 다니엘은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기에 이른다. 푸메로 형사와 의문의 사나이는 점차 다니엘을 조여오고 마침내 결전의 순간을 맞는다. 이때 다니엘은 자신이 알게된 훌리안의 삶으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바로 훌리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 대립이 끝나고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 다니엘은 엄마의 얼굴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삶은 반복된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사폰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는 스페인과 서구지역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이룬 작품이라고 한다. 옮긴이는 그의 작품이 라틴 문학계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라틴 문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 마법적 사실주의란 것이 요즘 유행하는 해리포터류의 환타지물들과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은 독특한 연쇄구조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제목 <바람의 그림자>가 작품 속 핵심 줄거리를 이끄는 소설 '바람의 그림자'와 같은 제목이다. 그래서 훌리안 카락스는 사폰 그 자신과 겹쳐진다.

주인공 다니엘의 삶은 훌리안을 추적하면서 훌리안이 그려놓은 생의 궤적을 좇아간다. 훌리안의 삶은 다니엘의 삶과 겹쳐지고 다니엘의 삶은 훌리안의 잃어버린 아들의 삶과 겹쳐지고, 다시 다니엘 아들의 삶과 겹쳐진다. 그런 면에서 <바람의 그림자>는 성장소설이다.

그리고 훌리안 카락스의 삶은 소설 속 자신이 만들어낸 등장인물과 닮아간다.

지명과 인명이 낯설어서 두 권이나 되는 분량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이 스릴러를 맥락을 놓치지 않고 읽기가 조금 버거웠다. <다빈치 코드>를 읽었을 때처럼 <바람의 그림자>는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를 읽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바람의 그림자>는 책에 대한 책이다.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세상으로 나온 한 권의 책을 두고 벌어지는 사랑과 애증, 욕망은 저자 사폰이 책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이 들린다. e-book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21세기에 도대체 누가 이들처럼 한 권의 잊혀진 책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단 말인가? 

"이 곳은 신비한 곳이야, 다니엘. 일종의 성전(聖殿)이지. 네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 한 권의 책이 새 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 때마다, 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 ...이 곳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책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독자, 새로운 영혼의 수중에 들어가길 기다리며 영원히 살고 있지." (1권 13~14쪽)

"언어보다 더 지독한 감옥이 있다." (2권 186쪽)

"언젠가 훌리안은 우연은 운명의 상처라고 쓴 적이 있어. 우연이란 없는 거야, 다니엘. 우리들은 우리 무의식적 욕망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이지." (2권 321쪽)

"독서라는 예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그것은 내밀한 의식이라고, 책은 거울이라고, 우리들은 책 속에서 이미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발견할 뿐이라고, 우리는 정신과 영혼을 걸고 독서를 한다고, 위대한 독서가들은 날마다 더 희귀해져가고 있다고." (2권 386쪽)
 

* '바람의 그림자' 공식 홈페이지 : http://www.lasombradelviento.net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소설속 배경을 연상시키는 사진자료들을 볼 수 있다.


덧글

  • 클라리사 2009/03/31 17:59 # 삭제 답글

    책 홈피도 있었군요.

    그러고보니 이 책을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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