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팝니다 - 조지프 히스, 앤드류 포터

혁명을 팝니다
조지프 히스, 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마티
2006


김규항의 말을 빌리자면 진짜 진보의 걸림돌은 개혁주의자다. 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혁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때우는 보수공사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개혁들 때문에 대중이 자본주의에 그릇된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혁명을 팝니다>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책이다. 가능치 않은 얘기들을 떠들어대는 진보 때문에 당장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조차 해결이 안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주류 문화에 대한 딴지걸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강화하고 자본주의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 많이 들어본 중도우파의 전형적인 입장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들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반문화(countercultural)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개혁주의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독자라도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볼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기 때문에 귀기울여볼 가치가 있다. 

지금 케이블 TV 음악채널을 틀어보자. 무수히 쏟아지는 뮤직 비디오들은 반항, 일탈, 저항, 비주류 등의 이미지와 메시지로 가득하다. 뮤직 비디오의 그러한 저항성은 역설적으로 가장 상업적이다. 소비자들이 '저항'이라는 이미지를 구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반문화는 체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그 자체가 체제이다. 60년대 히피는 90년대 소비를 이끄는 여피가 되었다. 현대 도시인의 일탈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SUV(Sports Utility Vehicle)는 그러한 반문화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속박을 벗어난 자유의 이미지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상품인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방법인 것 처럼 잘못 인식된 것은 사회이론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주류 문화를 인간에 대한 억압 체계로 해석했던 탓이 크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반문화는 일종의 유행과 같다. 저항해야 쿨하게 보인다.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과 계급기반사회 철폐를 말하면 촌스럽다. 또한 반문화는 향락주의로 변질되는 경향이 많다. 저자들은 묻는다. 과연 이게 혁명적 독트린인가?

그리하여 저자들은 주장한다. 진보 좌파는 사회정의 문제에서 반문화를 분리시켜내야 한다고. 사회를 변화시켜온 것은 반문화 운동이 아니라 체제내에서 추진된 신중한 개혁들이다 (민권, 여권신장 등).

너바나(Nirvana)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의 권총자살은 반문화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베인은 얼터너티브 음악에 대한 자신의 약속과 너바나의 대중적 성공을 조화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주류에 대한 대안으로 들고나온 음악이 주류 문화에서 너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념의 시대가 끝난 21세기 초 한국에서 체게바라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가 젊은이들에게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시장이 반소비주의자들의 요구에 훌륭히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신자유주의가 대세인 한국에서 'B급 좌파' 논객 김규항의 책들이 잘 팔리는 까닭도 설명이 가능할 듯 싶다. 김규항이 쿨한 좌파기 때문이 아닐까?

브랜드에서 말하는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키워드는 바로 '차별화'다. 반문화주의자들이 부르짖는 것도 바로 차별화다. 

마르크스나 쟝 보드리야르는 보편화된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광고를 쏟아붇고 소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욕구 또한 보편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들의 더욱 개별화, 차별화된 상품을 원한다. 이른바 rebel consumer의 탄생이다.

문제는 차별화를 기대하며 구입하는 소비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모두가 명품을 사면 결국 모두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소비를 통해 게임이론의 일종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주류에 저항하는 반문화가 인기를 끌어 모두가 반문화주의자가 되면 그순간부터 반문화 자체가 주류 문화가 된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별화보다 ‘과감히 동일해지는 것’ (p. 237)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처벌과 보상체계가 갖춰진 자신들 만의 규칙을 생성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체계가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p.97).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국가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모여 다시 국가를 꿈꾼다.

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 무더기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보다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빠져나갈 때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가 없으면 아수라장이 되고 결국 생존자 수는 줄어든다. 다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한 발만 더 내딛으면 전체주의적인 주장이 될 수도 있으므로 위험해보인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살아도 내가 죽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간의 문제는 저자들의 주장처럼 그렇게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같다.

또한 저자들은 다양화보다 '획일화'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표준화는 모두에게 편하다. 우리가 상품을 구매할때는 이 상품을 주변사람들과 공유할수 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재화는 사회적 맥락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그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도 오늘날 500개 채널이 존재하는 북미지역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사람들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참고 들어주겠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는 저자들의 주장에 의구심믈 떨치기 어렵다.

저자들은 국제 무역이 획일화보다 다양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제 3세계를 옹호하는 반글로벌 운동가들을 비판한다. 반무역 반문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인도, 네팔 등 다른 나라의 문화에 투영하여 이국적인 것을 자신 고유의 이데올로기로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의 결론은 시장철폐가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것.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주장은 진보 좌파 진영에서 충분히 귀기울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지배 이데롤로기의 합리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회이론,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상품을 인용해가며 반문화가 어떻게 시장에서 구매를 촉진해왔는지 증명해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읽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후반부는 무척지루했다.

스타벅스 커피 컵 안에 들어간 체게바라의 이미지를 채택한 표지를 보고 이 책을 집어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주장이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그 독자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 Further readings

노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과정>

데이비드 브룩스 <보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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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ago | 2008/02/05 11:06 | I Am What I Read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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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belle epoch : 나는.. at 2008/02/14 13:32

... 그다. 내친 김에 그의 컬럼집 '나는 왜 불온한가'를 도서관에서 빌렸다.책 제목에서도 공공연히 밝히듯 김규항은 좌파다. 2006년 대한민국의 좌파는 아웃사이더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좌파의 특성상 어디서든 좌파는 주류가 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좌파에게 지금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IMF 금융위기를 겪고, 민간인 대통령을 세번째 ... more

Commented by cuspymd at 2009/07/26 21:09
재밌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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