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I Am What I Think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우리는 어디를 쳐다봐야 할까?
손가락일까, 달일까?



최근 삼성과 관련된 굵직한 두 사건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주장 1. 손가락을 봐야 한다

김용철씨가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을 때 여론은 비자금의 존재 여부보다는 '이 사람이 왜 이 시점에 이런 폭로를 했을까'에 더 주목했다. 

그 결과 이 사람이 노래방을 불법 영업한 전력이 있다느니,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삼성 뒤통수를 치는 의리없는 인간이라느니, 그도 아니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저런 소리하고 나선 것일 거라는 등의 수군거림이 이슈의 흐름을 지배했다. 검찰 조사결과 실제 삼성 명의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었지만 이러한 흐름을 바꿀 순 없었다. 김씨는 '왜 내가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내 손가락만 보냐'고 항변했지만 여론은 달라지지 았았다.

주장 2. 달을 봐야 한다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 바지선이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아 엄청난 원유가 바다로 쏟아졌다.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국민들은 시름에 빠진 태안 주민들과 생태계 복원을 돕기 위해 태안으로 몰려들었다. 재앙에 가까운 이 사건이 엄청난 여파를 몰고왔지만, 정작 원인 제공자인 삼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이 공식 사과를 한다거나, 아니면 어떻게 보상을 할 계획이라던가 하는 얘기는 좀체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묻혀서 들리지 않는 뉴스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지난 25일 새벽 여수에서 또 다시 선박 침몰사고가 발생하자.....기름 유출의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측은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심 국면전환에 나쁘지 않다며 안도하는 입장이다...." (기사 원문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삼성은 '달'(이슈)이고, 두번 째 에피소드에서 삼성은 '손가락'(이슈를 만든 주체)이다. 삼성이 '달'이면 여론은 '손가락'을 보고, 삼성이 '손가락'이면 여론은 '달'을 본다. 만일 두번 째 에피소드에서 '손가락'이 정부였다면, 예컨대 해군함이 유조선을 들이받아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면 여론이 어떻게 움직였을까? 

위의 두 가지 에피소드에서 삼성이 처한 입장은 다르지만 대응 방식은 동일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가족'인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이슈가 종착점에 다다를 즈음(이제 국민들이 지겨워서 관심을 접게 되는 단계) 아마도 자사의 실무자들 몇 명을 희생양으로 내세울 것이란 추측을 하게 된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고?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결론 : 우리 사회에서는 '달'을 봐야 하냐 '손가락'을 봐야 하냐는 따위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힘을 가진 자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덧글

  • 목장별 2007/12/28 18:00 # 답글

    생각할 점을 던져 주는 글이네요. 이오 공감에 추천해도 되겠지요? ^^
  • 민하사 2007/12/28 19:35 # 답글

    쩝...
  • 랑쿨 2007/12/28 19:48 # 답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라고 반박을 해야하는데...
    저는 반박이 불가능하군요.

    포스트의 내용에 공감합니다. ㅠㅠ
  • imago 2007/12/28 20:48 # 답글

    한 일년 전 이글루에 둥지를 틀고 포스팅 몇개 긁적거려 놓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떠나있다가 오늘 싹 다 지우고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이 공간을 방치하지 않고 문득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들, 제가 듣고 익힌 것들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잘 가꿔나갈 생각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 공간에 첫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와썹 2007/12/28 20:59 # 삭제 답글

    삼성이 손가락일 때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싶고 삼성이 달일때 가메하메파를 날리고 싶더군요..
  • ssol 2007/12/28 22:14 # 답글

    와썹님 리플보고 폭소했네요 ㅜㅜㅜ
  • 鷄르베로스 2007/12/29 00:38 # 답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니라 잦인 경우도 많아서가 아닐까요?

  • 아홉뿌리 2007/12/29 03:19 # 답글

    가메하메파 괜찮은데요 ㅋ
  • 엘라이스 2007/12/29 03:43 # 답글

    일단 왠지 제목을 보고 편견스러운 결말을 도출할 거라 예상하고
    들어왔지만, 읽어보고 추천하고 갑니다.
  • Earthy 2007/12/29 05:12 # 답글

    달이던 손가락이던, 힘있고 돈 많고 권력 있으면 장땡.
    어쩌면 우리 나라, 진짜 살기 편(리)한 나라 일 지도 모르겠군요.
  • 지나가는 사람 2007/12/29 13:46 # 삭제 답글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정말 씁쓸한 현실일뿐입니다.;;;
  • 아토 2007/12/29 20:38 # 답글

    見月忘指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아키루루 2007/12/29 20:45 # 답글

    정치권도 손가락과 달을 바꿔가면서 언론플레이를 많이 해왔으니 삼성관련해서 그리했다고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언제 손가락을 봐야하고 언제 달을 봐야 한다고 언론이 유도하려고 해도 손가락과 달을 한꺼번에 볼만한 시각을 키워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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